21세기코리아연구소 2005 .7.8

 

연정은 절대로 안된다

- 노무현정부의 ‘연정론’을 대하는 진보세력의 올바른 입장

 

21세기코리아연구소 소장 조덕원

 

 

노무현대통령이 7월 5일 청와대홈페이지에 ‘연정론’을 띄운 후 그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지자제선거'와 '개헌'을 겨냥한 노림수라는 지적과 시기도 방법도 적절치 못했다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최고위원회는 “택도 없다”라고 한 천영세원내대표처럼 이를 일축하고 있다. 반면 노회찬의원 등 민주노동당의 일부에서 ‘조건부연정론’을 제기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원들은 대체로 ‘평등계열(‘피디’)’쪽이 ‘연정불가론’을 주장하는데 비해 ‘자주계열(‘엔엘’)’쪽이 ‘조건부연정론’에 미련을 두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조건부연정론'은 '비판적 지지론'이 그러했던 것처럼 당밖의 '자주계열'을 크게 흔들고 있다.

 

과연 노무현정부의 ‘연정론’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은 어떠한 입장을 세워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연정은 절대로 안된다. 여기서 ‘절대로’란 ‘무조건적으로’라는 뜻이다. 즉 조건부로 받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한마디로 말하면 반미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친미개량정당인 열린우리당과 적대적 모순관계이니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비유하면 불과 물이 만나면 불이 꺼져버리듯이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면 결국 민주노동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 이유를 크게 세가지로 집약해 보았다.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을 분열시키는 주장

 

연정이 절대로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연정론’이 나오자 벌써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의견이 갈리고 당원게시판에 올라오는 당원대중의 목소리가 갈리고 있다. 사실 지금의 민주노동당 수준에서 ‘연정론’과 같이 귀맛 좋은 사안에 대해 당지도부와 당원들의 일부가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원칙론’과 ‘현실론’이 맞서는 것도 필연이다. 민주노동당의 지금 기풍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소모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민주노동당의 당원게시판은 토론문화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평이다. 당내 의견이 갈리는데 당 지지대중의 의견도 갈리지 않을 수 없다. 다 눈에 보이는 정해진 수순이다.

 

‘연정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이렇게 분열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당대열이 갈라지고 대중지반이 흔들리는 것은 결국 당역량을 약화시키고 진보역량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보적 대중정당(민주노동당)이 자주적 민주정권의 담당자라는 명제에 운동대오가 별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대안정권의 주체라고 해도 그만한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코 집권할 수 없는 법이다.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역량이고 역량의 요체는 단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집권을 한사코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일이란 결국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이 분열된다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이 확대된다는 뜻으로도 된다. 왜 그런가. 민주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온 당대열과 대중지반이 열린우리당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에서 ‘연정론’에 동요하는 세력은 주로 열린우리당 내 ‘개혁세력’과 과거 한 대오에서 동거동락했던 ‘자주계열’이다. 또 민주노동당의 지지대중 중 ‘연정론’에 동요하는 세력은 대부분 지난 기간 선거 때가 되면 ‘개혁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보였던 ‘범 386세력’들이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당정체성’이 당원대중과 국민대중에게 백프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노무현정부, 열린우리당정부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지난 기간 이남의 친미개량세력은 늘 자기 정치력의 위기를 진보개혁세력을 흔들고 그 일부세력을 떼어 내어 포섭하는 방식으로 모면해 왔다. 2003년말 재신임건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데 2004년 봄 탄핵사건과 총선건도 모양만 다를 뿐 하나의 맥락이었다. 즉 노무현정부가 위기를 맞자 진보개혁세력 내 일부가 동요하며 ‘비판적 지지’를 한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치, 통일외교적 무능과 국민적 불만을 진보개혁세력의 동요와 지지로 해소하려는 방식은 이제 상용수법이 되었다.

 

열린우리당정부의 위기란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에게는 호기가 된다. 그런데 6.15자주통일시대, 부르주아민주개혁의 시대에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지 않을 수 없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법, 군사파시즘의 잔재인 한나라당은 ‘합리적 보수’니 뭐니 하며 아무리 분칠을 한다고 해도 국민적 신망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정부의 위기란 결국 민주노동당의 호기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정부는 한나라당이라는 거대야당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주된 경쟁상대인 민주노동당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타격하는 전략전술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아무 수도 쓰지 않고 시간만 보낸다면 열린우리당이 장악한 권력은 결국 민주노동당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의 진보개혁적인 정당들의 수많은 집권사례처럼.

 

어렵게 볼 것이 없다. 싸움에서 지지 않아야 하겠는데, 아측이 약해지면 타측도 약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타측을 약하게 만드는데 분열책, 이간책만큼 좋은 것이 또 있는가.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준비정도와 조건을 볼 때 분열이간책은 얼마든지 통한다. 민주노동당 내 정파구도와 분파주의는 외부의 분열이간책이 작용하기 좋은 환경이다. 열린우리당과 그 정부, 그리고 그 배후세력에는 이러한 분열이간책에 이골이 난 전략전술가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역사 속 권력쟁투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모략이란 언제나 이런 것이었다. 노무현의 얼굴과 편지내용은 소박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책략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굳이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연정론’은 진보세력의 통일전선전략, 집권전략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진보세력은 지난 기간의 실천과 논쟁을 통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통일전선전략으로 진보적 집권을 실현할 데 대한 노선을 확립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민주노동당 중심의 지역통일전선전략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연정이란 곧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집권전략의 부정인 것이다. 창당된 지 불과 5년밖에 안되는 민주노동당에게 통일전선전략, 집권전략 자체가 흔들리거나 부정되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없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연정이란 곧 진보정당과 보수정당 간의 연정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러한 연정이 가능한 사례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반파쇼민주전선(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나 반외세전쟁을 위한 민족통일전선(중국의 제2차국공합작)밖에 없다. 물론 지금 국면은 군사파쇼정권을 반대하거나 반미반일전쟁을 벌여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친미보수정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민족적인 친미정책과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정책 때문에 반미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적대적 대치가 첨예화되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주된 대중지반인 노동자의 비정규직차별철폐투쟁과 농민대중의 쌀시장개방반대투쟁이 분신이나 할복을 동반하는 사활적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사실로도 잘 알 수 있다.

 

이남진보세력이 진보세력과 개혁세력 간의 반파쇼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민주연립정권을 수립하는 전략을 세웠던 적이 있었다. 바로 박정희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파쇼정권 치하이다. 당시는 일체의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부정되며 부르주아개혁세력의 존재 자체도 위태로웠던 때이다. 진보세력을 상징하는 민통련과 개혁정치세력을 상징하는 통일민주당이 국민운동본부로 결집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함께 외쳤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부르주아개혁정치세력이 미국의 품안에 들어가 정권을 장악한 친미개량정권시절이고 신자유주의정권시절이다. 그러니 반파쇼통일전선이니 민주연립정권이니 하는 노선이 통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로 이 점, 정권과 정세의 변화로 인해 이남진보세력의 통일전선전략과 집권전략이 반파쇼민주전선과 민주연립정권 노선에서 민족민주전선(지역통일전선)과 자주적 민주정권 노선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운동을 선도하는 운동가들이 이런 노선과 이론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다면 늘 열린우리당과 분열이간책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여름만 되면 등장하는 공포영화처럼 ‘비판적 지지론’이라는 유령이 선거 때만 되면 출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의 ‘연정론’이 올해말 보궐선거와 내년의 지자제선거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언론의 분석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운동대오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과학적 노선과 전략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비판적 지지론’은 수많은 변이를 일으키며 진보대오를 끊임없이 혼란시킬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연정론’의 ‘연정’을 ‘대연정’과 ‘소연정’으로 나누어 전자는 한나라당과의 연정, 후자는 민주노동당 또는 민주당과의 연정으로 풀이한다. 지난 기간 이남의 부르주아개혁세력에게 ‘연정’이란 ‘민주연립정부’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노무현정부가 권력말기에 정권위기가 심각해지다 보니까 극우보수정당인 한나라당과의 연정까지 제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제정신을 가지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별력을 잃은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에게 민주당은 사실 연정의 대상이 아니라 통합의 대상이다. 같은 친미부르주아개혁세력끼리 무슨 차이가 있다고 연정이겠는가. 두 당은 계기가 주어지고 감정만 풀리면, 또는 ‘김대중선생께서 한말씀 하시면’ 언제든 통합하고도 남을만한 관계다. 따라서 ‘민주연립정부’라는 뜻의 ‘연정’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연정뿐이다.

 

최근 국방부장관 해임안 부결과정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전술적 공조가 이루어지자 ‘빅딜설’을 비롯한 수많은 의혹이 불거졌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노동당에게 ‘열린우리당의 2중대’라는 오명이 뒤따르는 판인데 이런 사건에 이어 ‘연정론’이 제출되었으니 민주노동당 내부상황이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 중앙의 입장이 ‘연정불가 공조가능’으로 정리되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계속 '연정'의 불을 지르고 있고 당 안팎의 '자주계열' 내에서 '조건부연정론'이 솔솔 새어나오는 조건에서 경각성을 늦출 수는 없다. 당안팎 '자주계열’의 상당수가 여전히 반파쇼민주전선과 민주연립정부 이론을 교조적으로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민주노동당의 원칙을 수정하는 주장

 

연정이 절대로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다음으로 민주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을 주된 대중지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이고 열린우리당은 중산층을 주된 대중지반으로 하는 개량정당(소자산계급정당)이다. 또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반대, 미군철수, 연방제방안을 주장하는 반미진보정당이고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찬성, 미군주둔, 연합제방안을 주장하는 친미보수정당이다. 즉 두 당의 성격(‘정체성’) 차이는 불과 물처럼 뚜렷하다. 지지기반으로 보나 노선과 정책으로 보나 둘의 관계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모순관계이다. 따라서 두 당의 연정이란 곧 두 당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거나 절충하는 모양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대중지반이 다르고 노선과 정책이 다른 두 당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대통령을 배출하고 의석수나 장관수로 절대우세인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만약 민주노동당 장관이 자기당의 근본정책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정부 내에서 고립을 자초할 것이며 나아가 연정 파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자기당의 노선과 정책이 아니라 다른 당과의 연합과 연정을 우선하기로 한 만큼 당연히 노선과 정책의 수정이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당의 노선과 정책이 수정될 때 ‘원칙론’을 주장하는 당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들은 반응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민주노동당 내 원칙을 주장하는 당원들은 탈당을 할 것이고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걸었던 민중은 당을 외면하게 말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순간 수많은 당원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지키기 위해 당을 탈당할 것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 농민들은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는 신자유주의정부 속에 들어가 눈앞의 권력에 취해있는 민주노동당을 향해 격분을 터뜨리며 치를 떨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연정을 통해 자신의 노선과 정책을 수정하는 순간 당이 깨어지고 대중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입증이 필요 없는 자명한 이야기다.

 

이런 조건에서는 민주노동당이 특유의 장점인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을 배합하는 전술을 구사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여당과 연정을 한다는 것은 역시 집권정당이 되어 정국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신자유주의정부의 일부가 되어 노동자, 농민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정부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것인데, 그런 활동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민주노동당 출신 노동부장관과 농림부장관을 통해 비정규직법안과 쌀시장개방안을 통과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독소조항 한두개를 뺐다는 정도로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 대중을 개량화시키는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의 연정조건으로 비정규직차별철폐와 쌀시장개방반대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을 바꿀 리 없다. 최대한 양보해도 두루뭉술하게 절충하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며, 이미 연정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눈이 멀고 마음이 급한 민주노동당은 일단 들어가서 어떻게 해보자는 심정으로 대충 합의하고 연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압도하는 정부 내의 분위기와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은 민주노동당을 걸음걸음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함정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연정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국민대중 대다수가 각성되지 못한 조건에서 민주노동당은 사면팔방 포위되어 열린우리당의 개량주의정책에 손을 들어주고 그 정책수행의 박수부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이미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보수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충분히 보여주었던 역사적 경험담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사회당이 자민당과 연정을 통해 이런 식으로 철저히 몰락하고 말았다. 당시 사회당은 오랜 기간 제1야당의 자리를 지켜온 관록의 유력정당이었으며 연정에서 국무총리까지 넘겨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 사회당은 당내 분열과 민중의 외면으로 자멸하게 되었고 2004년 참의원선거에서는 한 석의 지역구도 건지지 못했다. 눈앞의 일시적 권력의 맛에 취해 근본을 버린 진보정당의 말로란 이렇듯 비참한 것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바둑격언처럼 작은 것을 노리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 바로 연정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지금 연정이란 독 묻은 사과와 같은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집권을 불가능하게 하는 주장

 

연정이 절대로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다음으로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근본목표는 보수정당과의 연정이 아니라 독자적인 집권이다. ‘연정론’(‘조건부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연정을 통해 국민적 인지도를 높이고 집권경험을 쌓는 것이 독자적 집권을 위해 유리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고 연정의 속성을 알지 못하는 환상일 뿐이다. 왜 그런가. 연정이란 말 그대로 두 당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권력을 나눈다는 것이며 동시에 책임을 나눈다는 것이다. 연정을 하면서 권력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고 하는 발상은 가능하지가 않다. 설사 연정합의문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명시해도 국민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연정을 통해 책임을 나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그것은 지금 노무현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모든 정책적 죄악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무슨 말이냐면 경제를 침체시키고 물가와 부동산 정책을 실패한 책임,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생계를 파탄시킨 책임, 교육과 문화 정책을 실패한 책임, 굴욕적인 군사외교정책에 대한 책임, 통일정책에서 후퇴한 책임 등 모든 정책상 과오를 함께 짊어진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이 과거 어떻든 간에 열린우리당과 연정을 하는 한 똑같이 책임지우고 똑같이 비판하게 될 것이다. 침몰하는 배에 타면서 자기만 수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창당된 지 5년밖에 안되고 국회의원 10석밖에 안되는 신생진보정당이 관록의 집권여당과 지금 정세에서 연정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독자성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자기의 독자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신생진보정당에게 있어서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될 성 부른 나무 싹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은 이번 연정건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이 끝까지 진보의 길을 고수할 정당이 못된다고 단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년밖에 안되는 10석짜리 정당의 수준에서도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는데 그 이상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럽이나 일본의 예만 보더라도 연한이 높아지고 의석이 많아질수록 권력의 유혹에 심하게 흔들린다. 시작이 반이라고 초장부터 기회주의적으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길을 걸은 민주노동당에게 인생을 걸고 희망을 걸 어리석은 진보주의자나 민중은 없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노동당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것은 다름 아닌 독자성이다.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소걸음이라도 좋으니 우직하게 진보의 원칙을 견지하고 나가라는 참여론이 빗발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정권이 붕괴되고 사회주의집권당이 해체된 이유도 결국 진보적 원칙을 견지하지 못한 데 있다. 70살 넘은 노 집권여당도 여지없이 무너지는데 이제 5살 된 신생진보정당은 오죽하겠는가. 진보주의자가 뭉치고 민중이 밀어주지 않는 민주노동당에 집권의 미래가 있을 리 만무하다. 노무현정부라는 타이타닉호에 승선해서 누리는 기쁨은 잠깐이요 그 침몰과 함께 겪는 고통은 영원하다. 약삭빠른 열린우리당은 타이타닉의 부르주아처럼 구명선을 타고 살아나겠지만 우직한 민주노동당은 하층에 갇힌 가련한 프롤레타리아처럼 수장되고 말 것이다. 일본의 자민당과 사회당이 그러했듯이.

 

민주노동당의 유일한 집권경로는 연정도 아니고 선거변혁도 아니다. 기층민중을 조직한데 기초해 광범한 중간세력을 하나의 전선에 포괄하며 그 힘으로 반미를 기치로 내건 전민중적 저항운동을 벌여 현 권력을 해체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길 뿐이다. 이 길 외에 그 어떤 길을 상상하는 것도 다 우리 사회와 변혁의 성격에 맞지 않는 관념이고 환상일 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연정론’이든 ‘조건부연정론’이든 모두 근본적 변혁의 길을 포기하고 눈앞의 권력을 쫒는 출세주의와 조급주의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변혁과 진보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지 않는 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전술적 공조마저 부정하는 것은 좌경적 편향을 범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6.15공동선언을 실현하고 정치활동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사안별, 시기별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다. 공조란 통일전선이 아니라 공동의 적을 고립시키기 위해 상호간의 투쟁을 잠시 유보하며 맞추는 보조를 말한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은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는 없으나 전술적으로 공조할 수는 있다. 친미수구세력이자 극우반동세력인 한나라당이 건재하는 한 그 세력을 우선적으로 고립타격하는 전술은 필요하다. 남과 북의 두 정권이 6.15공동선언을 합의하고 그 이행을 다짐하는 한 6.15공동선언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해체를 위해 두 당은 공조를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연정을 하면 민주노동당의 당대열과 대중지반이 분열하고 원칙적 노선에서 일탈하고 진보적 집권이 불가능해진다. 민주노동당은 연정을 하는 순간 당은 둘로 깨어질 것이고 투쟁하는 민중은 침을 뱉고 돌아설 것이다. 수많은 당원들이 즉시 탈당하며 연정을 주도한 사이비진보주의자들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당지도부가 무능하면 당발전을 지체시키지만 원칙이 없으면 당자체를 해체시킨다. 다행히 현재의 당지도부는 ‘연정불가’의 원칙을 밝혔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부 지도부의 입장에서 드러나듯이 ‘연정절대불가’가 아니라 ‘연정상대불가(조건부연정론)’의 의미도 내포한 ‘연정불가론’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는 여전히 개량주의와 출세주의라는 기회주의가 존재하고 이로부터 당의 노선이 끊임없이 교란되고 있다.

 

이 땅을 강점하는 미국과 우리민중 간에 어떠한 협상이 가능하고 어떠한 연정이 가능하겠는가. 그 미국을 철저히 추종하는 친미보수정당과 그 미국을 철저히 반대하는 반미진보정당 간의 협상과 연정도 마찬가지다. 반미진보정당과 친미보수정당 사이에 연정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연정은 상대적으로(조건적으로) 안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무조건적으로) 안된다.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진보의 불꽃에 연정이라는 찬물을 끼얹으려는 음모와 야심에 끝까지 맞서 원칙을 사수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사랑하고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바라는 모든 진보주의자, 활동가들은 이 사활적 원칙으로부터의 일탈을 선동하는 모든 그릇된 주장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운명이 걸린 변혁과 진보의 원칙, 지키면 살고 버리면 죽는다. (2005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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