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의 정치이념과 민주주의혁명의 강령

한호석
민주노동당 미국동부지역위원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사회성격의 근본적 변화와 노동계급의 정치이념
3.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 그 형성과 발전
4.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민주주의혁명의 강령
    4-1)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
    4-2)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
5.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
6.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줄임)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실천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할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강령의 한 구절이다.

자본주의 극복(defeating capitalism),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succeeding to socialist values), 진보정치 구현(realizing the progressive politics)이라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political ideology)을 한 마디로 요약한 개념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은 그 세 가지 전략개념에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자기 강령에서 밝힌 정치이념을 자본주의 극복,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 진보정치 구현이라는 세 가지 전략개념으로 이해하기에는 그 개념에 담긴 뜻이 넓고 깊어 보인다. 넓고 깊어 보이는 세 가지 전략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당의 강령에 들어있는 세 가지 전략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데 놓이는데, 여기서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이, 세 가지 개념은 ‘일하는 사람들(the working people)’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근로대중(the working masses)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근로대중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당의 강령을 작성할 때, 자본주의 극복,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 진보정치 구현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진보정당의 정치이념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전략개념으로 선택하여 강령에 앉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개념은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를 따라 전진하는 민주주의혁명의 정치이념에 잘 들어맞는다.

세 가지 전략개념을 통하여 드러나는 진보정당의 정치이념은 어떠한 색깔일까? 이 직설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이 글에서 찾으려 한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전략개념을 가지고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을 논하고,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이라는 전략개념을 가지고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을 논하며, 진보정치 구현이라는 전략개념을 가지고 민주주의혁명의 정치이념을 논한다.

2. 사회성격의 근본적 변화와 노동계급의 정치이념

법이 보편적으로 규제하고 국가권력이 공고하게 유지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사회체제 또는 사회제도(social system)라 한다.

사회체제는 고유한 성격을 갖는다. 그 까닭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가 고유한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사회체제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사회성격(social character)이라 한다.

민주노총이 외치는 세상을 바꾸자는 투쟁구호는 사회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변혁의 뜻으로 이해된다. 사회성격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므로, 사회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사회변혁 또는 혁명이라 한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으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 성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이다. 이를테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관계에 의거하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 사회체제는 자본주의사회성격을 갖게 되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관계에 의거하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 사회체제는 사회주의사회성격을 갖게 된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그에 따라 형성된 사회성격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2-1) 근로대중의 생산활동에는 반드시 물질적 수단이 요구되는데, 생산활동에 이용하는 물질적 수단을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이라 한다. 생산수단이란 이를테면 원재료, 도구, 기계, 공장, 도로, 항만, 토지, 산림 등이다.

2-2) 생산수단 그 자체는 생산활동을 진행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이 근로대중의 노동과 결합하여 사회적으로 이용될 때, 다시 말해서 근로대중이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이용할 때 비로소 생산활동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수단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수단 이용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2-3) 생산활동은 근로대중의 사회적 노동으로, 합목적적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서, 생산활동에 이용하는 생산수단은 사회적으로가 아니라 사적으로, 합목적적으로가 아니라 맹목적으로 소유된다.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맹목적으로 소유한 생산수단 사유화의 역사는 아득한 원시공동체사회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4) 생산활동의 사회적 성격과 합목적적 성격에 배치되는 것이 생산수단 소유의 사적 성격과 맹목적 성격이다. 생산수단 소유의 사적 성격과 맹목적 성격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관계를 형성하는 근본원인이다.

2-5)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사회계급이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생산활동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회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게 된다.  

2-6)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관계가 극단화, 전면화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가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뒤바뀐다. 그로써 생산수단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물질적 조건 곧 자본으로 전화되며,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계급의 무기로 변질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사회적 노동과 합목적적 생산활동은 소수의 자본계급을 위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피착취과정으로 전락한다.

2-7)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계급은 생산활동에 대한 자기의 지배력을 사회전체에 대한 지배력 곧 국가권력으로 확대한다. 생산수단의 소유가 국가권력의 소유로 확대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사회성격이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국가권력의 소유관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을 소유한 사회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자기의 계급적 요구에 맞게 개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국가권력의 소유가 생산수단의 소유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는 사회성격을 결정하는 두 가지 근본요소이다. 사회성격을 논할 때,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그에 따른 생산관계가 법에 의해서 공고하게 성립되고 유지되는 것을 경제체제(economic system)라 하고, 국가권력의 소유관계와 그에 따른 권력관계가 법에 의해서 공고하게 성립되고 유지되는 것을 정치체제(political system)라 한다. 따라서 사회체제의 성격 곧 사회성격은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사회체제 안에 경제체제와 정치체제가 포괄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경제체제와 정치체제를 포괄한 사회체제의 성격을 표현하거나 반영하는 이념을 정치이념이라 한다. 정치이념과 분리된 경제이념이라는 개념은 쓰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현존하는 낡은 사회성격과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의 사회성격을 밝혀주는 정치이념이다. 그러한 정치이념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이다.

사회변혁의 정치이념과 사회변혁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이 없으면 사회변혁강령이 나올 수 없고, 사회변혁강령이 없는 사회변혁은 밀고 나갈 수 없다.

사회변혁의 성격과 임무를 전략개념으로 밝힌 것을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이라 하며, 사회변혁의 목적과 경로를 정책으로 밝힌 것을 사회변혁강령이라 한다.

사회변혁이 자기의 성격과 임무를 밝혀주는 정치이념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까닭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와 국가권력의 소유관계가 자연발생적으로, 맹목적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발전한다고 해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가 자연발생적으로, 맹목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증기기관이 전동기관으로 바뀌고, 전동기관이 다시 원자력기관으로 바뀌면서 자본주의생산력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에 따라서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자본계급에서 노동계급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력의 발전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객관적, 물질적 조건을 예비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권력이 발전한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소유관계가 자연발생적으로, 맹목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의회제, 삼권분립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국가권력이 발전을 거듭한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소유자가 자본계급과 관료집단의 결합체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동맹체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권력의 발전은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객관적, 물질적 조건을 예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것은 생산수단을 사회화(socialize)하여 생산관계(relations of production)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생산관계를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맹목적이 아니라 합목적적으로 개조하는 것은 생산수단에 결합되어 있는 노동력의 담지자이자 생산활동의 주체인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오직 근로대중의 의식적이며 합목적적인 정치활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것은, 자본계급과 관료집단의 결합체가 틀어쥔 정권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동맹체가 틀어쥔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정권을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맹목적이 아니라 합목적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집권의지를 가진 근로대중에 의해서, 오직 그들의 의식적이며 합목적적인 정치활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근로대중이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정치활동의 성격과 임무를 밝혀주는 이념, 그리고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권을 세우는 정치활동의 성격과 임무를 밝혀주는 이념을 모두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이라 한다. 그 이념을 근로대중의 정치이념이라 하지 않고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이라 하는 까닭은, 노동계급이 모든 근로대중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사회계급이기 때문이다.

3.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 그 형성과 발전

소수의 지배계급, 착취계급이 절대다수의 근로대중에게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낡고 썩은 세상. 차별의 족쇄에 묶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빚더미에 짓눌린 근로농민들과 파산에 내몰린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과 분노와 저항이 가득 찬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근로대중에게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강렬한 투쟁의지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강렬한 투쟁의지를 가진 근로대중이 마침내 전선에서 몸을 일으킬 때, 그들이 손에 움켜쥐어야 하는 것은 사상의 무기이다. 사상의 무기는 근로대중이 사회변혁투쟁을 벌이는 전과정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전략무기이다.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나선 근로대중이 움켜쥔 사상의 전략무기를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이라 한다.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이념을 갖는가 갖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사회변혁에서 핵심적이며 전략적인 과제로 나선다.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이념을 갖지 못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정치이념을 갖지 못한 조건에서도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대중의 대중투쟁이 통합되면서 격렬한 대중항쟁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그러한 대중항쟁은 사회변혁의 진행형태이지 사회변혁은 아직 아니다. 대중항쟁은 사회변혁의 명운을 결정하는 투쟁방식이자 진행형태이지 사회변혁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이념을 사상의 전략무기로 움켜쥐고 집권의지를 불태우며 전선에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집권의지를 가진 근로대중이 움켜쥐어야 할 사상의 전략무기 곧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3-1) 18세기 서유럽에서 신흥사회계급으로 등장한 자본계급은 봉건주의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면서 봉건주의(feudalism)를 대체하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들고 나왔다. 봉건주의사회체제가 무너지는 사회체제변동기에 자본계급이 내놓은, 봉건주의정치이념 이후의 새로운 정치이념은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의 형식을 접합한 정치이념이었다.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의 형식을 접합한 새로운 정치이념을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자본계급에 의한, 자본계급을 위한, 자본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다.

3-2) 자유주의에 민주주의의 형식을 접합하였다는 말은, 자본계급이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보통선거권(universal suffrage)을 내주었을 뿐이라는 뜻이다.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자본계급이 틀어쥠으로써 사실상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게 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진들, 그것은 민주주의의 무의미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3-3) 현실이 보여주는 대로, 오늘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절망과 고통과 죽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이 궁핍과 빈곤의 수렁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 15만 볼트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 목숨을 건 농성투쟁을 벌이며 생존권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라는 ‘죄목’을 씌워 쇠창살로 끌고 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장기농성투쟁을 계속해온 고속철도 여성승무원들의 소박한 요구를 기어이 해고통지로 짓뭉개버리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쥐어 짜낸 천문학적 자금 40조 원을 선제핵타격을 노리는 제국주의군대의 침략전쟁기지 건설사업에 퍼주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최대의 국익이라고 떠드는 것도 모자라,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평택주민을 강제로 내쫓고 저항하는 시위대를 잔인하게 짓밟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소리높이 찬양하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구걸하는 동안, 350만 명에 이르는 근로농민의 삶이 제국주의농업자본의 손아귀에 옥죄여 시들고 말라 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240만 명에 이르는 영세자영업자들에게 과중채무와 연쇄파산의 올가미를 씌워 가정파탄과 자살충동으로 내모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1997년에 재산 50억 원 이상을 가진 부유층이 4만4천 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14만6천 명으로 늘어나면서 그들이 평균연간소득 9천208만 원씩 거머쥔 반면, 빈곤층에게 돌아간 연간소득은 186만 원으로 줄어든 현실이 말해주듯이, 빈부소득격차를 무려 49.5배로 벌여놓으면서 사회전체를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쪼개놓은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3-4) 국가권력을 틀어쥔 소수의 관료집단과 생산수단을 틀어쥔 소수의 자본계급 밑에서 지배와 수탈을 당하는 절대다수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본계급의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자기들의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고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갈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3-5)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대부분은 생존권사수투쟁을 벌이면서도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명백하게 제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요구는 언제나 생존권 요구 뒤에 숨겨진 채 그 내용이 굴절되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생산현장에서 자본계급과 국가권력의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생존권사수투쟁을 벌이지만, 생존권사수투쟁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집권의지는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3-6) 그러나 근로대중이 생존권사수투쟁의 한계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정치적 요구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집권의지를 아직 갖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정치적 요구는 근로대중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을 통해서 제기되고 표출된다.

3-7) 자본계급과 야합한 관료집단은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는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을 번번이 폭력으로 짓눌러 좌절시키고 무력화하기 때문에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는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으로는 실현되지 못한다.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이 진보정당의 정치투쟁, 그리고 근로대중 전체가 결집한 통일전선의 대중투쟁과 통합되면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민주주의혁명의 전략적 승리에 의해서 마침내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가 실현되는 것이다.

총파업투쟁이 번번이 좌절하는 것을 경험한 노동계급은 자기를 포함한 근로대중 전체의 집권의지를 실현할 강력한 정치조직을 일으켜 세우는 싸움에 나서게 되는데, 그 싸움에 의해서 세워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조직을 진보정당(progressive party)이라 하고, 그 싸움에 의해서 전개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략적 공동전선을 통일전선(united front)이라 한다.  

3-8)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는 그들 자신이 정치활동과 생산활동의 주체로 일어서는 것, 다시 말해서 그들 자신의 정치세력화이다. 근로대중을 정치세력화하고 그들의 집권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이념을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democratic political ideology of the working class)이라 한다.

3-9) 자본계급과 관료집단이 지배하고 착취하는 대상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근로대중 전체이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본계급과 관료집단의 야합에 맞서 싸우는 정치동맹을 맺고 단일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한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이념이며 동시에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근로대중 전체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이념으로 된다.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민주주의정치이념인 것이다.

3-10)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이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보통선거권만 행사할 수 있고 실제로는 국가권력의 행사나 생산수단의 이용과 관련해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아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민주주의정치이념이다.

3-11)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은 자주화강령과 국유화강령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자주화강령과 국유화강령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를 밟아 가는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주화강령과 국유화강령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그런데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은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이 추구하는 정치이념이 민주주의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정치이념이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현실에 맞지 않는 주관주의적 상념일 것이다. 그 까닭은, 생존권사수투쟁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그리하여 민주주의정치이념조차 아직 움켜쥐지 못한 근로대중이 갑자기 사회주의정치이념을 따르는 정치적 비약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 현실에 맞지 않는 급진적 정치이념은 정치이념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과학성과 현실성을 덜어놓는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인 공상으로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에서 바라보면,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들 자신을 정치활동과 생산활동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시야에 들어온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적 경험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요구가 그들 자신의 정치적 실천과 투쟁 속에서 심화되고 발전되면서 과학성과 혁명성을 가진 정치이념으로 성립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노동계급이 정치적 실천과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성립될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어느 유능한 지식분자의 두뇌에서 나오는 개인적 창안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실천과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 자신의 것으로 성립되고 심화되고 발전된다.

노동계급은 정치적 실천과 투쟁을 벌이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사회체제가 지구 위에서 사라지는 아득히 먼 미래 어느 날까지 끊임없이 정치적 실천과 투쟁을 밀고 나갈 것이다. 노동계급은 그처럼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지는 정치적 실천과 투쟁 속에서 자기의 정치이념을 계속 심화시키고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사회역사의 발전단계마다 제기하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여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에는 노동계급이 자기의 정치적 실천과 투쟁 속에서 발견하고 체험한 진리들이 녹아있다.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노동계급의 피로 얼룩진 사회변혁경험, 노동계급의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 노동계급이 지향하는 사회변혁의 미래전망을 담은 과학적인 전략개념으로 정립되고 정치적 신념으로 굳어진다. 그런 까닭에 노동계급의 정치이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사상심리적 충동을 일으키고 그 이념을 실현하는 정치투쟁으로 그들을 불러일으키고 힘있게 떠밀 수 있는 것이다.

4.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민주주의혁명의 강령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단절하고 자본주의사회체제를 바꾸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를 집대성한 정치이념이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다. 그러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실현하는 강령을 가리켜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와 최종목적을 밝혀주는 사회변혁의 최저강령 곧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이라 한다.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정당형태를 규정한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규정하는 정당형태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중심과 근로대중의 대중적 기반을 가진 진보정당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세력화, 전략동맹화한 진보정당의 강령이다. 진보정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를 집대성하여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정립하고 그 이념을 실현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작성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제시하고 그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진보정당의 강령이자 통일전선의 강령이다.

또한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정권형태를 규정한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규정하는 정권형태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중심과 근로대중의 대중적 기반 위에 세워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 곧 자주적 민주정권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주주의혁명을 밀고 나가기 위하여 자기의 정치조직인 진보정당을 세우고 그 정당에 의거하여 민주주의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 자주적 민주정권을 세우게 될 것이다. 자주적 민주정권은 민주주의혁명에서 승리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역량으로 의회, 정부, 사법부를 구성한 새로운 민주주의권력체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자주적 민주정권의 강령이다.

사회체제의 성격이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 단계 사회변혁의 성격도 정치강령과 경제강령에 의해서 결정된다. 정치강령을 자주화강령이라 하고, 경제강령을 국유화강령이라 한다. 자주화강령과 국유화강령은 현 단계 사회변혁이 민주주의혁명임을 밝혀준다. 민주주의혁명의 양대 강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1)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이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자기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정치강령을 말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자기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길은 그들 자신의 정권,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 위에서 논하였던 대로, 민주주의혁명으로 세워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은 자주적 민주정권이다.

자주적 민주정권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와 정치적 요구를 집대성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에 의거하여 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투쟁한다. 자주적 민주정권의 투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하여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4-1)-(1) 앞서 발표한 글에서 논하였던 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지배와 억압, 착취와 수탈로 짓누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은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결박시킨 신식민지체제(neocolonial system)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신을 짓누르고 자기의 피땀을 쥐어짜는 제국주의세계체제(imperialist world system)와 단절하고 예속자본주의사회(subordinate capitalist society)를 변혁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신식민지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식민지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서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첫걸음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신식민지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단절하는 것을 반제국주의민족해방(anti-imperialist national liberation)의 과업이라 하는데, 그 과업을 수행하는 정치강령이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정치강령이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선의 맨 앞에 치켜든 정치강령이며 동시에 미국, 유럽연합, 일본 같은 제국주의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제시되는 정치강령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같은 제국주의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과 마찬가지로 사회변혁의 길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한다. 그 까닭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들 자신과 단절시켜야 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무너뜨려야 하는 동일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은 핏줄과 언어가 서로 다른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국제연대와 공동투쟁으로 이끄는 세계혁명의 의의를 지닌다. 국제연대와 공동투쟁에 의해서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은 제국주의시대에 투쟁하는 진보적 인류의 보편적 정치강령으로 된다.

4-1)-(2)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여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단절하였다고 해서 민주주의혁명의 전략적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짓누르고 그들의 피땀을 쥐어짜는 고통의 또 다른 근원인 예속자본주의사회를 변혁하여야 지배와 억압, 착취와 수탈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혁명의 전략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예속자본주의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반자본주의계급해방(anti-capitalist class liberation)의 과업이라 하는데,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정치강령이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이다. 따라서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이중과업을 수행하는 정치강령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변혁하려는 자본주의사회와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변혁하려는 자본주의사회는 성격이 서로 다르다. 전자가 예속적으로 발전한 또는 저발전(underdevelopment)의 수준에 있는 자본주의사회라면, 후자는 자율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속적으로 발전한 또는 저발전의 수준에 있는 자본주의사회를 바꾸는 사회변혁의 경로는, 자율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사회를 바꾸는 사회변혁의 경로와 같을 수 없다.

예속적으로 발전한 또는 저발전의 수준에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수행할 때 중시하는 것은,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를 밟아간다는 점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에 대해서는 앞서 나간 글에서 논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이중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신식민지체제에 의해서 제국주의세계체제에 결박된 예속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추구하는 자주화강령의 핵심내용이다.

4-2)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

민주주의혁명의 자주화강령에 따라 자주적 민주정권이 섰다고 해서 사회성격이 자동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회성격을 바꾸는 사회변혁에는, 국가권력의 소유관계를 교체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교체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본계급이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이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이란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경제강령이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한다는 것은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한다는 뜻이다.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한다고 할 때, 사회적 소유라는 말은 국가적 소유 곧 국유화(nationalization)라는 뜻이다. 생산수단을 집단적으로 소유할 수도 있지만, 집단적 소유(collective ownership)와 국가적 소유(state ownership)는 서로 다른 소유형태이다. 집단적 소유란, 이를테면 공장이나 기업을 노동조합이 소유하거나 농장이나 광산을 협동조합이 소유하는 형태를 말한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는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 다시 말해서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란 산업전반을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경제를 지배하는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다.

산업전반을 국유화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선진자본주의사회에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고, 인민경제를 지배하는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예속적으로 발전한 또는 저발전의 수준에 있는 예속자본주의사회에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를 밟아간다는 점에서 자주화강령과 국유화강령은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으로 일치된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4-2)-(1)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은 자주적 민주정권의 생산수단 소유형태를 규정한다. 자주적 민주정권이 중요산업부문에서 밀고 나가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보완하는 국가적 소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국유화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보완하는 국가적 소유로 되는 경우, 그것은 자본주의적 국유화로 전락하게 된다.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자본주의적 국유화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적 국유화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국가권력의 소유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국가권력의 소유관계가 생산수단 국유화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혁명에서 중요산업의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소유관계의 질적 변화는, 국가권력을 소유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 곧 자주적 민주정권이 일으키는 경제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화이다.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국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소유한 국가이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에 의해서 운영되는 국가이므로, 그러한 국가는 자기에게 귀속된 소유권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과 배치되게 또는 그들의 요구와 어긋나게 행사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행사할 수도 없다.

국가에 귀속된 중요산업부문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국가관료들(state bureaucrats)인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국가권력을 소유한 조건에서는 국가관료들이 제멋대로 중요산업부문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 곧 자주적 민주정권의 지도를 받는 국가관료들이므로 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복무하게 된다.

물론 그들이 자주적 민주정권의 지도에 따라 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당위적 인식이지 현실적 인식이 아니다. 민주주의혁명의 집권당, 노동계급, 국가관료의 삼자관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2)-(2)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란 제국주의독점자본과 그에 예속된 국내독점자본을 몰수하여 중요산업부문의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다. 남(한국)사회와 같은 예속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러하듯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은 중요산업부문의 거의 모든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있는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혁명의 길에 나설 때, 제국주의독점자본은 생산수단을 포기하고 빠져나갈 것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철수는 예속정권의 물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만일 제국주의세력의 무력침공이나 국내군부세력의 무력진압으로 민주주의혁명이 파괴되지 않는다면 중요산업의 국유화가 점거투쟁이나 강제몰수가 아니라 평화로운 접수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요산업부문의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은 중요산업부문에서 중앙집중계획경제(centralized planned economy)를 실시하는 것을 뜻한다. 중요산업부문에서 실시하는 중앙집중계획경제는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자본주의경제체제는 중요산업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운영되므로, 중요산업의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면 자본주의경제체제 전반을 개조, 변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중요산업부문에서 실시하는 중앙집중계획경제는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와 사회민주주의적 국유화를 갈라놓는 분기점이며,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를 사회민주주의적 국유화와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 가는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은 중요산업부문에서 중앙집중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밀고 나간다.  

4-2)-(3)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란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중요산업부문 생산관계를 노동계급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생산관계로 개조하는 것이다.

국유화한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관계를 개조하는 문제는 국유화한 중요산업을 어떻게 경리하는가에 있다. 경리란 공장이나 기업을 경영, 관리, 통제, 처분하는 행위를 뜻한다.

만일 국유화된 중요산업의 경리가 자본가의 경리에서 국가관료의 경리로 바뀐다면, 생산노동과 경리활동이 분리되면서 생산노동은 생산자인 노동자가 맡고 경리활동은 비생산자인 국가관료가 맡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생산직 노동자들이 경리로부터 소외된다. 중요산업부문에서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고 해서 국유화된 공장이나 기업에서 노동계급의 자주적 경리가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란 국유화된 공장이나 기업에서 생산직 노동자와 국가관료가 새로운 생산관계를 형성하여 노동계급의 자주적 경리를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는 생산직 노동자와 국가관료의 관계를 자주적 생산관계로 형성시킬 뿐 아니라 그 관계를 노동계급의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시킨다. 생산직 노동자와 국가관료의 관계를 자주적 생산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근본요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데 국유화된 공장이나 기업의 경리활동에서 노동계급의 자주적 경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경리활동에서 국가관료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부정하고 생산직 노동자의 지위와 역할만 배타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른바 노동자자주관리제에서 그런 오류는 불가피하다. 국유화된 중요산업부문에서 노동계급의 직접적 경리는 배타적 경리가 아니다.

반대로, 국유화된 중요산업부문에 대하여 중앙집중계획경제를 실시하면서, 경리활동에서 생산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부정하고 국가관료의 경리활동만 인정하는 것도 오류이다. 이른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에서 그런 오류는 필연적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는 중앙집중계획과 노동자자주관리를 자주적 경리체계로 통합하는 것이다. 그 양자를 자주적 경리체계로 통합하여야 중앙계획기구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지령경제(command economy)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노동계급의 배타적 경리활동에 기울어진 노동자자주관리제의 한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중앙집중계획경제와 노동자자주관리는 상호모순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모순관계에 있지만, 그와 달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상호모순적이 아닌 것처럼 중앙집중계획과 노동자자주관리도 상호모순적이 아니라 상호협력적이다.

국가가 공장이나 기업의 경리를 독점하고 국가관료가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와 인연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를 헐뜯는 사람들은 국가가 공장이나 기업의 경리를 독점하는 오류, 국가관료가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오류가 마치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비방한다.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한 뒤에 노동자들이나 국가관료들이 경리에 무능하여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자주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때, 생산직 노동자와 국가관료의 관계에서 안일무사주의와 형식주의, 권위주의와 이기주의, 부도덕과 무능 같은 관료주의적 폐단이 생겨날 수는 있으나, 그러한 폐단이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에 의해서 형성된 자주적 생산관계에서 생겨난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는 관료주의적 폐단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관료주의적 폐단이 생겨나는 까닭은,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한 이후 노동계급과 국가관료가 국유화강령에 따라 자주적 경리활동을 수행할 만큼 의식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에 따라 경리활동의 자주화가 실현되느냐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경리활동의 자주화란 경리주체의 의식을 자주적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경리권이란 경리주체에게 귀속되고 경리주체가 행사하는 권한과 책임이므로 경리주체의 의식을 자주적으로 개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을 수행하는 노동계급과 국가관료가 자기의 정치의식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사상개조(thought-remolding)는 힘들고 어려운 전략문제이며, 자주적 민주정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략문제이며,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속도를 결정짓는 전략문제이다.

사상개조에서 나서는 과제는 경리주체의 의식을 자주적으로 개조하는 생산현장의 정치사업이다. 생산현장의 정치사업은 경리주체인 노동계급과 국가관료의 자주적 의식을 촉진하고, 자주적 능력을 발양시킨다. 정치사업은 정치조직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므로, 생산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당원의 정치조직 곧 생산현장에 조직된 자주적 민주정권의 당조직이 경리주체의 의식을 자주적으로 개조하는 정치사업을 밀고 나간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에 따라 세워진 자주적 경리체계는 생산노동, 경리활동, 정치사업을 삼위일체의 관계로 결합시킨다. 자주적 민주정권의 중앙집중계획경제는 바로 그 삼위일체의 관계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4-2)-(4)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이 섰다고 해서, 사회변혁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정권에 의거하여 더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자주적 민주정권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더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온갖 난관과 역경을 뚫고 나간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더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으로 이끌어 가는 자주적 민주정권에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혁명 속에서 한층 강인하게 단련된 사회변혁역량 곧 더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물리적인 힘이다. 그 물리력은 국유화강령에 따라 자주적 민주정권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한 중요산업부문의 노동계급에게서 나오는 정치역량, 그리고 국유화강령에 따라 세워진 중앙집중계획경제와 자주적 생산관계에서 나오는 경제역량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는 자주적 민주정권의 사회변혁역량을 수 십 배로 강화한다.

5.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을 가장 뚜렷이 밝혀주는 강령적 문건은 1951년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크에서 열린 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일 것이다. 그 선언문에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라는 제목이 달려있는데, 흔히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부른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제시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1989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제18차 대회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원칙선언’이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은 1923년에 창설된 전세계 사회민주주의정당의 비정부기구 국제조직이다. 현재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는 전세계 143개 사회민주주의정당이 가입하였으며, 유엔의 제1협의대상기구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에 가입정당의 수가 두 배나 급증하였다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발원지는 자본주의체제가 국가독점자본주의단계로 발달하여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세우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서유럽의 세 나라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사회민주주의운동이 뉴딜주의(New Dealism)의 노동정책에 포섭되거나 맥카시주의(McCarthyism)의 정치탄압을 받았던 미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정당이 발붙이기 힘들었다. 현재 미국에는 미국민주사회당(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과 미국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s USA, SDUSA)이 있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은 주로 유럽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대체로 영국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당들은 노동당(labor party)이라는 이름을 쓰고, 프랑스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당들은 사회당(socialist party)이라는 이름을 쓰고,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당들은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이라는 이름을 쓴다.

북(조선)에도 조선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있다. 지금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의 정당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는 중이다. 조선로동당은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회민주주의정당과 자기를 구분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노동당을 ‘레이버당’이라고 부른다.

남(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정당의 흐름은 사회당(1949년 창당), 대한노동당(1949년 창당), 노동당(1955년 창당), 진보당(1956년 창당), 민주혁신당(1957년 창당), 사회당(1960년 창당), 사회대중당(1961년 창당), 통일사회당(1961년 창당), 대중당(1967년 창당), 민주사회당(1981년 창당), 신정사회당(1982년)으로 이어졌다. 한때 혁신정당이라고도 불렀던 남(한국)의 사회민주주의정당들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해 단명으로 존재를 마치는 군소정당의 불우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그와 같은 사회민주주의정당의 흐름 속에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지향한 색다른 흐름이 섞여있었다는 점이다. 리승만정권, 박정희정권, 전두환정권의 정치적 억압이 극에 이르렀던 194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입밖에 꺼낼 수조차 없었으므로, 실제로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추구하였던 사람들마저도 자기의 정치이념을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처럼 각색하여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진보정당으로 실체화(materialize)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성숙하였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남(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정당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존속하였던 민중당은 당시 합법정당 건설전략에 따라 창당된 민주주의혁명의 진보정당이지 사회민주주의정당은 아니었다. 민중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을 혼동하는 한계가 보이는데, 그런 한계는 민중당 안에서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와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공유되지 못하였으므로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중당과 10년의 격차를 두고 2000년에 진보정당 건설전략에 따라 창당된 민주노동당의 강령에서도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이 뒤섞여있는데, 그 까닭은 그 두 갈래의 정치이념을 각각 따르는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민주노동당 안에 전략적으로 공존, 협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강령에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을 구분한다고 해서, 그 두 정치이념을 각각 따르는 사회정치세력이 갈라서서 두 개의 진보정당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전선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따르는 사회정치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을 따르는 사회정치세력이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고 단일한 진보정당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발전전망도 전혀 다르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와 혼합경제, 평화와 군축, 환경문제, 기술발전의 사회적 통제 등을 주요내용으로 삼는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원칙선언’은 “스탈린주의의 범죄, 대규모 학살, 그리고 인권침해”를 비난하면서 “자유화와 민주화를 통해 공산주의사회를 변화”시키는 반공주의전략을 내놓았다. 그 전략은 “중앙집중에서 탈피하는 시장경제체제의 발전”과 “무엇보다도 인권과 정치적 개방”을 추구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의 반공주의전략은 제국주의지배세력의 반공주의공세와 구분하기 힘들다.

또한 그 선언에는 “국제적인 불평등 제거를 위한 노력이 민주적인 세계사회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모호한 내용이 들어있으나, 실제로 서유럽에서 집권하였거나 제1야당으로 떠오른 사회민주주의정당들은 예외 없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민족해방운동을 외면하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타협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원만한 계급협조를 통하여 사회보장을 확대하고 빈곤을 감소시키는 계급격차 완화로 나아간다.

자본주의체제가 자율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나라들에서 계급협조정책이 사회보장을 확대하고 빈곤이 감소하며 계급격차를 완화하는 것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수탈해간 막대한 이윤 가운데 일부를 자기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나누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사회적 분배 뒤에 정체를 숨긴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옥죄는 제국주의세계체제의 대량수탈이다.

그러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과 다르게,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완수한 조건에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단계적으로 실현해 가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를 따른다. 물론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진보정당도 당면정세에서 계급격차를 완화하는 투쟁을 벌이지만 그것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에 복무하는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은 민주주의혁명의 중요산업 국유화를 통하여 중앙집중계획경제와 노동자자주관리를 결합한 자주적 생산관계를 창조하는데 비해,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생산의 공적 관리와 생산수단의 공공적 소유를 추구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이 말하는 생산의 계획화란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아니라 공공적 소유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democratic control)를 뜻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공공적 소유는 국영기업, 공기업, 생산자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등의 혼합경제로 귀결된다. 사회민주주의 혼합경제체제에서 중앙집중계획경제와 노동자자주관리를 결합한 자주적 생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의 국공유화강령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통제하고 사회적 분배를 확대하여 자본주의적 착취와 수탈을 완화함으로써 결국 자본주의생산관계를 안정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혁명의 중요산업 국유화강령과 사회민주주의의 국공유화강령이 서로 다른 것처럼, 그 두 강령이 규정하는 정권형태도 서로 다르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규정하는 정권형태인 자주적 민주정권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이 규정하는 정권형태인 사회민주주의정권과 다르다.

자주적 민주정권은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기치로 들고 싸우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권이지만, 사회민주주의정권은 이른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추구하는 노동계급, 자본계급, 국가권력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계급협조정권이다.

이처럼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과 다른 까닭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쥐어짜는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수탈과 자본주의사회체제의 착취를 제거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은 민주주의혁명의 사회체제이행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므로 그 정치이념이 체제이행의 역동성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에 비하여,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그 어떤 사회체제이행을 위해서도 복무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혼합경제에 기초한 사회개량을 위해 복무한다.

6. 글을 맺으며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각양각색 정당들이 전세계에 수없이 많은데도, 오직 반공주의(anticommunism)를 절대적 정치이념으로 내세우는 극우정당만 활개쳤던 남(한국)의 정치현실은, 모든 형태의 진보적 정치이념을 기피하거나 혐오하는데 너무 익숙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남(한국)의 역대 지배계급이 대대로 진보적 정치이념을 불순하고 위험한 것으로 지목하고 배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현실을 박차고 사회변혁의 정치이념을 뚜렷이 내세운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였나니, 진보정당이라고 부르는 민주노동당이 바로 그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의 등장은 반공주의를 절대이념으로 강요하고 주입하였던 비이성적 정치현실에 대한 결별이며 극복이며 청산이다.

새삼스럽게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이 지니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에서 나온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제시하고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실현한다는 뜻에서, 오직 그러한 뜻에서 진보정당의 깃발을 치켜들고 지배와 착취의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의 한복판에 선뜻 나설 수 있다.

지배와 착취의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기피하고 혐오하는 비이성적 정치현실을 넘어서는 사상전(ideological warfare)을 자기의 당면임무로 수행한다. 그 사상전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길을 밝혀주는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진보정당의 강령에 담아 그 정치이념의 주인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돌려주는 투쟁이다.

진보정당과 마찬가지로 진보적 사회단체들도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정치이념을 전파하고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지만, 그 정치이념을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으로 작성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진보정당에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다.

세계의 주인인 근로대중, 그들 노동계급 1천500만 명, 농민 350만 명, 그리고 영세자영업자 240만 명은 진보정당이 제시한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들고 집권의지를 불러일으키며 사회변혁의 길을 가고 또 가리라. (2006년 5월 20일 작성)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월간 『이론과 실천』 2006년 6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