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의 몰락과 1987년 체제의 붕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도덕주의자의 오류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이 한참 곤두박질치더니, 아니나 다를까 5월 31일에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흔히 하는 말로 참패를 당한 것이 아니라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였다. 

집권당이 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것은 예사로운 선거패배가 아니라 반드시 그 어떤 곡절이 있는 정치적 이변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정치적 이변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짚어내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남(한국)사회의 정치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된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현 집권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이 끝없이 떨어지는 이른바 ‘민심이반’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갈래로 나오는데 거의 모든 분석은 집권세력의 오만, 무능, 독선을 그 원인으로 손꼽는 데 주저함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남(한국)의 정치사에 놀라운 이변을 일으키고 정치권을 밑바탕부터 뒤흔든 원인을 집권세력의 오만, 무능, 독선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도덕적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현상과 그 발생원인을 도덕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도덕주의자들의 인식이 언제나 추상적 관념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을 절망에 빠뜨린 사상 최악의 선거참패를 논하는 자리에서 도덕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집권세력의 오만, 무능, 독선 따위의 개념이 한껏 추상화된 도덕적 관념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한국)의 정치현실은 도덕적으로 논할 만큼 그렇게 한가하고 모호하고 추상적이지 않다. 

전문연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과학에 관한 기초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남(한국)의 정치현실이, 아니 이 땅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정치현실이 사회계급관계 위에 성립한다는 점을 하나의 공인된 상식으로 인정한다. 사회계급관계를 무시하고 정치현실을 논하려는 것은 실체 없는 그림자를 논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덕주의자들은 사회계급관계를 외면하거나 그것에 대해 무지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추상적 관념을 모호한 논리로 꾸며낼 수밖에 없지만,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눈길을 모으는 지점은 사회계급관계의 흐름과 뒤바뀜이다. 명백하게도 집권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그 결과로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정치적 이변은 오늘 남(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계급관계의 흐름과 뒤바뀜이 불러온 현상인 것이다. 

2. 양극으로 갈라진 사회

2006년 현재 남(한국)에는 어떠한 사회계급관계가 존재하는가? 언론보도를 유심히 듣노라면, 오늘 남(한국)사회에서 1천500만 노동계급, 350만 농민, 그리고 240만 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절대다수 근로대중이 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한국)에서 자본주의생산력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사회경제지표가 자꾸 높아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보도와는 정반대로, 노동자, 농민, 영세사업자를 포함하는 절대다수 근로대중의 삶은 숨조차 내쉬기 힘들만큼 황폐화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생산력의 증대와 경제지표의 상승이 근로대중의 생존권 보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경제성장이라는 나무에 먹음직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있지만, 정작 그 나무를 피땀 흘려 가꾸는 근로대중은 열매를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백하게도 경제성장이라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모조리 쓸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전망도 빼어난 최고급아파트에 들어앉아 세계적인 명품을 마음껏 즐기며, 눈부시게 번쩍이는 외국산 고급승용차를 몰고 풀향기 싱그러운 골프장을 찾아다니고, 이따금씩 심심치 않게 해외여행길에 올라 돈을 물 쓰듯 뿌리며 다니는 이른바 최상층이다.

피땀 흘려 일할수록 삶의 질이 차츰 황폐화되는 2000만명 근로대중의 궁핍 그 반대쪽에서는, 한 줌도 되지 않는다는 문학적 표현에 들어맞는 극소수 최상층이 바로 그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극소수 최상층은 연봉 1억2천만 원 이상 거머쥐는 고액연봉자들이다. 1997년에 7000명밖에 되지 않았던 고액연봉자는 2004년에는 2만4000명으로 급증하였다. 극소수 최상층은 또한 연봉 1억2천만 원 이상 거머쥐는 고소득사업가들이다. 고소득사업가는 1997년에 2만3116 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6만5460 명으로 크게 늘었다. 극소수 최상층은 또한 금융자산 11억원 이상을 거머쥔 거액금융자산가들이다. 거액금융자산가는 1997년에 4000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무려 2만3184명으로 급증하였다. 또한 극소수 최상층은 언론에 포착되지 않는 숨은 부자들이다. 숨은 부자는 경제활동인구의 0.15%에 해당하는 4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고액연봉자, 고소득사업가, 거액금융자산가, 숨은 부자를 모두 합하면 14만6000명인데 이는 경제활동인구의 0.5%에 해당한다. 경제성장의 열매를 독식하고 있는 14만6000명은 놀랍게도 지난 7년동안 절대다수 근로대중의 삶이 황폐화되어온 바로 그 기간에 자기 재산을 세 배로 늘렸다. 이전에 부자동네로 소문났던 강북의 성북동과 강남의 압구정동에 더하여 강남구 도곡동과 분당 정자동이 새로운 부자동네라고 소문이 난 것은 경제성장의 열매를 독식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더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2000만명이 뼈빠지게 일해서 창출한 사회적 재부를 마구 긁어간 14만6000명은 그저 ‘놀고먹는 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손에 틀어쥔 막대한 자산을 강력한 지렛대로 하여 남(한국)의 지배체제를 움직인다. 그들은 다른 한쪽에서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고 남(한국)의 지배체제를 움직이는 정치세력과 전략적 동맹을 맺고 있다.  

절대다수 근로대중과 극소수 지배계급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관계, 그것을 사회계급관계라 한다. 상호단절되고 상호대립하는 사회계급관계를 다시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너무나 깊이 패여 이제는 서로 넘나들 수 없게 된 골이 한복판에 가로놓인 그런 양극으로 갈라진 사회적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계급관계의 상호단절과 상호대립을 사회적 양극화(social polarization)라 한다. 

남(한국)의 사회적 양극화는, 최상층 소득이 전체 소득의 31.7%를 차지하고, 최상층 가구와 최하층 가구의 소득격차가 무려 50배로 벌어진 경제지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요즈음 극소수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적 불신, 그들만의 풍요에 대한 대중적 혐오가 지배체제 전반을 겨냥한 근로대중의 저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을 예감하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한 사람들은 사회적 양극화가 마치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에 의해서 일어난 현상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남(한국)의 사회계급관계는 그 사회가 성립된 날부터 태생적으로 상호단절과 상호대립의 양극으로 갈라진 것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사회체제의 뿌리가 뒤집혀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사회계급관계에서 생겨난 불평등과 차별을 착취와 억압이라는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온갖 사회적 불행과 재앙과 고통을 쏟아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적 양극화는 일상적이며 보편적이다. 자본주의사회가 양극으로 갈라진 것은 결코 특정한 시기에나 나타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특수한 현상이 아닌 것이다.

3.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양극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때로 사회적 양극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는 점이다. 남(한국)사회에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이었다. 

그 무렵 남(한국)사회에는 절대다수 근로대중과 극소수 지배계급을 갈라놓은 사회적 양극 사이를 이어주는 사회적 교량현상이 나타났다. 사회적 교량현상은 절대다수 근로대중도 아니고 극소수 지배계급도 아닌 제3의 사회계층이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회적 교량현상을 불러일으킨 제3의 사회계층을 흔히 중산층이라 한다. 그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파트 한 채와 소형승용차, 그리고 웬만큼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았다는 소시민적 안락감에 푹 젖어있는 단출한 식구로 살아가는 제3의 사회계층이다. 

근로대중은 중산층이 그렇게 사는 꼴을 곁에서 자꾸 엿보는 사이에 어느덧 자신을 괴롭히는 사회적 불행과 재앙과 고통을 넘어 언젠가 자기에게도 찾아올 것 같은 사회적 행복과 번영과 기쁨의 약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른바 ‘소득 2만 달러 시대’ 또는 ‘21세기 선진국 대열 진입’이니 하는 그럴싸한 장밋빛 약속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절대다수 근로대중과 극소수 지배계급 사이에 깊이 패인 골을 그럴싸한 장밋빛 약속으로 가득 채우는 사회적 교량현상이 나타나는 동안 그리하여 그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주역인 중산층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동안, 근로대중은 사회적 양극화를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나중에는 사회적 양극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만일 사회적 교량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놓을 수만 있다면 사회계급모순까지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 근로대중의 의식 속에서 사회개량의 돌풍을 일으킨다. 

절대다수 근로대중과 극소수 지배계급 사이를 그럴싸한 장밋빛 약속으로 이어준 사회적 교량 위에서 때 아닌 돌풍을 타고 깃발이 보란 듯이 휘날리고 있었으니 그것이 지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들고 있는 빛바랜 깃발, 아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해 갈가리 찢겨나간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이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서 뚜렷이 되살아나지는 않지만, 사실 1987년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중산층의 힘이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해였다. 최루탄과 닭장차와 진압봉이 난무하던 투쟁의 거리를 휩쓴 투쟁대오 맨 앞줄에는 언제나 제3의 사회세력이 흔드는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선 김대중, 김영삼 같은 ‘민주인권투사’들은 그 무렵 제3의 사회세력으로 발돋움한 신흥중산층으로부터, 그리고 실제는 중산층이 아니면서도 중산층이 되리라는 장밋빛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던 근로대중으로부터, 그리고 언론의 눈길을 교묘히 피해 ‘민주인권투사’들 배후에서 유형무형의 지원을 들이대 주었던 제국주의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힘을 얻었다. 

‘민주인권투사’들은 그 힘으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한 극우반동세력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며 정치적 승리를 맛보기 시작하였고, 삼당합당이라는 불안정한 조정기를 거쳐 1993년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문민’라는 낯선 이름의 새로운 정권을 마침내 내올 수 있었다. 오늘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대통령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열린우리당 주도세력은 1987년 내내 ‘민주인권투사’들과 함께 최루탄 연막을 뚫고 투쟁의 거리를 몸소 뛰어다녔던, 그리하여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을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민주인권투사’들이 극우반동세력과 맞붙은 싸움에서 정치적 승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대중이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 아래 모여들어 그들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4. 너무 빨리 무너지는 1987년체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지난 20년 동안 남(한국)의 근로대중은 장밋빛 약속 하나 착실히 믿고 온갖 불행과 재앙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국제통화기금사태로 일자리를 빼앗기고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 쫓겨났을 때도, 월세방을 이리저리 옮기며 고생스럽게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사회적 차별의 올가미에 걸려 시시각각 생활의 숨통이 조여옴을 느끼면서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자살소식을 전하는 참담한 언론보도에 머리를 설래설래 저으면서도 남(한국)의 근로대중은 그렇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 절대다수 근로대중은 집권세력이 내놓은 장밋빛 약속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민주인권투사’들이 세워놓은 정권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거두어들였다. 그들이 흔드는 깃발을 차갑게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머리 위에 증오와 저항의 돌팔매를 쏟아 붓기 시작하였다.

절대다수 근로대중과 극소수 지배계급 사이를 한때 장밋빛 약속으로나마 이어주었던 사회적 교량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는 놀라운 광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1987년 체제의 붕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지금 남(한국)사회 곳곳에서는 사회적 교량이 무너진 잔해 밑에 깔린 중산층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다.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몽상으로 이끌었던 장밋빛 약속이 산산이 깨져나가는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장밋빛 약속을 믿고 온갖 불행과 재앙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으나 결국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과 ‘사회보장 축소’라는 생존파탄의 벼랑끝자락으로 밀려난 근로대중의 의식 밑바닥에서 분노가 펄펄 끓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살길마저 막막하게 황폐화된 생활현장에서 신음하는 수백만, 수천만 근로대중이 쏟아 붓는 증오와 저항의 돌팔매를 맞으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간신히 들고 서 있는 저 빛바랜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이 한없이 초라하게 보이는 것은 1987년 체제의 미래전망이 온통 붕락위기 속에 잠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와 인권’을 소리높이 노래하며 20년동안 근로대중에게 향기 나는 비누거품 같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장밋빛 약속을 남발하였던 정치세력이 몰락하는 것은 사회개량이라는 특정한 정치이념이 전면적으로 파산되고 있음을 뜻한다. 언론보도에 나오는 식상한 표현을 빌리면, 가장 심각한 양상으로 일어나는 ‘국정파탄’이다.

민심이 청와대에 등을 돌리고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것은 집권세력이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객관적 증거이다. 현집권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몰락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5. 붕괴의 사회경제적 원인

1987년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것은 사회경제적 원인이다. 그 까닭은 사회경제적 원인이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생존파탄의 벼랑끝자락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1987년 체제가 무너지는 사회경제적 원인은, 1980년대에 이룩하였던 이른바 대외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서는 대외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라는 점잖은, 그리고 매우 정확하지 않은 개념을 쓰지만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경제현실을 읽어보면 그것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지배구도 안으로 질질 끌려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복무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부산물을 거둬들이는 신식민지예속형 경제라고 해야 옳다. 오늘 남(한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수한 선진기업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한 삼성, 엘지, 현대, 포스코 등은 거죽만 세계적인 명품처럼 번지르르하고 정작 실속은 남에게 고스란히 내주는 신식민지예속형 기업의 전형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신식민지예속형 기업의 생산성이 오르기는커녕 자꾸 떨어지는 것이다. 그 까닭은 과잉생산, 과잉투자, 과잉신용의 삼각파도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몰아치면서 그 체제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전 세계 기업들이 이윤율 저하라는 함정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 함정은 일단 빠져들기만 하면 어느 한 기업, 어느 한 나라의 경제력으로 헤어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깊은 구렁텅이이라는 점에서 대자본가들은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윤율 저하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불가피하게 대량수탈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저지르는 대량수탈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피의 제전’ 그대로이다. 이때 제국주의독점자본은 ‘피의 제전’에 바칠 제물부터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들이 찾은 제물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이윤율 저하라는 파탄의 함정 앞에서 극도로 날카로워진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돌변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숨통을 조이고 살을 찢고 피를 빨고 뼈를 깎아내기 시작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머리 위에 덮어씌운 신자유주의세계화라는 고상한 이름의 위장막을 걷어내는 순간, 거기에서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피의 제전’이 야만의 몰골을 드러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대량살육을 계속하는 저주스러운 침략전쟁이 제국주의침략군대가 날뛰는 ‘피의 제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벌여놓은 다자간 세계무역협정(WTO)이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따위 역시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대량수탈을 저지르는 ‘피의 제전’인 것이다.
 
‘피의 제전’에 나선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식민지예속형 경제를 마구 쥐어짜는 광기 어린 대량수탈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생존파탄의 재앙으로 끌어가고 생존파탄의 벼랑끝자락에 밀려나 몸부림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증오와 저항의 돌팔매를 들어 집권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6. 또 하나의 깃발을 바라보며
  
다시 1987년의 정치현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체제를 논할 때 반드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노동자대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남(한국)노동계급투쟁사에 기록된 하나의 뜻깊은 사건이다. 그 뜻깊은 사건은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는 제3의 사회계층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부르짖으며 대통령 직접선거를 정치적 요구로 내걸고 극우반동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과 사뭇 대조적으로 전개되었다.
 
작업모를 머리에 쓴 수십만명 노동계급은 노동으로 거칠어진 일손마다 기름때 묻은 노동도구를 움켜쥐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지게차를 앞세운 거대한 투쟁대오를 이루었나니, 언제나 그 투쟁대오의 진두를 지켰던 또 하나의 깃발이 있었다. 그것은 오직 단결만이, 단결된 투쟁만이 노동자가 살길이라는 피맺힌 함성 속에 휘날리던 또 하나의 깃발, 노동계급의 심장을 뒤흔드는 노래 ‘철의 노동자’에 나오는 바로 그 민주노조의 깃발이었다.
 
명백하게도, 1987년 남(한국)의 하늘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민주인권투사’들이 들고 싸웠던 사회개량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그 깃발과 마주선 다른 쪽에서 노동계급이 들고 싸웠던 민주노조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20여년 전 중산층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교량의 붕괴와 함께 1987년 체제가 빠르게 무너지고, ‘민주인권투사’들이 들었던 사회개량의 깃발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오늘 급박한 정세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계급이 들고 싸웠던, 아니 오늘도 그들이 들고 싸우는 민주노조의 깃발이다.

울산과 부산, 마산과 창원으로 이어지는 동남부의 신흥공업지역을 순식간에 휩쓸며 하늘 높이 휘날리던 민주노조의 깃발은, ‘민주화와 인권’을 소리치던 사회개량의 깃발에 가려 한때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1995년 민주노총의 깃발로, 2000년 민주노동당의 깃발로 계승, 발전되었다. 
  
민주노총의 깃발과 민주노동당의 깃발은 중산층의 지지에 떠받들린 ‘민주인권투사’들이 사회개량의 깃발을 꽂았던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설 1500만 노동계급과 450만 농민과 240만 영세자영업자들이 휘날리게 될 사회변혁의 깃발이다. 오늘 남(한국)에서 사회변혁의 깃발이 휘날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뿐이다.

그런데 사회변혁의 깃발을 움켜쥔 정치활동가들, 그리고 그 깃발을 따라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은 스스로 극소수 지배계급의 정당이라 공언하는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긁어모은 정치적 이변이다. 사회변혁의 깃발을 움켜쥔 정치활동가들, 그리고 그 깃발을 따라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사이에서는 자기들과 같은 사회계급적 처지에 있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떻게 자기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외면하고 극소수 지배계급의 정당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느냐 하는 탄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처럼 의혹에 쌓인 정치적 이변을 분석하려면 2006년 현재 남(한국)사회의 정치성향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우선 대중의 정치성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통계자료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기구들이 내놓는 각종 통계자료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정치문제에 관한 통계자료라는 것은 어느 때,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별반 믿을 만하지 못하지만, 대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2006년 현재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안정층은 37.1%이며,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양자의 지지층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진보개혁층은 25.8%이다.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층은 28.7%이다. 진보개혁층과 무당파층을 합하면 54.5%이므로, 진보개혁층이 무당파층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문제는 선거전 판세를 좌우하는 결정적 문제로 된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이른바 무당파층의 실체이다.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하지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대중이 무당파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 현재 남(한국)에서 비경제활동인구는 무려 1520만6000명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구직포기자 159만5000명, 취업준비자 25만2000명, 진학준비자 17만명, 군입대 대기자 5만2000명 등이다. 이들은 가사, 학업, 연로, 심신장애 등으로 일하지 못하는 비근로대중이다.

1500만에 이르는 비근로대중도 2000만 근로대중과 마찬가지로 지난 20년동안 1987년형 사회개량의 깃발을 들고 ‘민주화와 인권’을 외친 정치세력이 내놓은 장밋빛 약속을 믿고 그들을 지지하면서 팍팍한 삶을 참고 견디어온 대중이다.

이른바 ‘감성정치’가 판치는 선거전에서는 바로 그 비근로대중의 심리정서적 동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의 심각성은, 1천500만에 이르는 비근로대중이 중산층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등을 돌리고 극소수 지배계급의 정당인 한나라당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정당 득표율을 살펴보면, 한나라당 1천8만6354표(53.8%), 열린우리당 405만6367표(21.6%), 민주노동당 226만3051표(12.0%), 민주당 186만3239표(9.9%), 국민중심당 43만6774표(2.3%)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한나라당의 압승은 비근로대중의 심정적 지지를 원인으로 하여 돌출한 정치적 이변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중산층의 정당에 정치적 심판을 내렸으나 극소수 지배계급의 정당에 대한 미래의 정치적 심판은 투표로 내리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 2000만명에 더하여 비근로대중 1500만명이 총결집한 3500만명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룬 대중은 투표가 아니라 투쟁으로 극소수 지배계급의 정당을 심판할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으로 정치적 심판을 내리는 것을 대중항쟁이라 한다.